If(만약에)
냇x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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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Tri C
for. Danva
Inspired from Kim-Dan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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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느 겨울날에 있었던 두사람의 크고 작은 해프닝.
토요일 늦은 저녁, 촬영을 마친 나타샤는 장비를 정비하는 스태프들에게 미소가 서린 인사를 남기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늦게까지 진행된 화보 촬영 때문에 근육들이 비명을 지를법 했으나 평소에 자주 몸을 단련하던 그녀였기에 이정도 스케쥴은 거뜬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쉴드의 요원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그녀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스탭들에게는 애써 힘든척 있지도 않은 땀을 닦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일이 오히려 그녀에겐 더욱 곤욕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예쁜 포즈를 취하는 것도 모자라서, 카메라가 꺼진 후에도 연기를 해야 한다니. 나타샤는 새삼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지는 것을 느끼며 스타일리스트의 손에 몸을 맡겼다. 입고 있던 협찬받은 옷을 스튜디오 내의 간의 탈의실에서 갈아입은 나타샤는 곧장 걸음을 옮겨 그녀의 대기실로 향했다. 주말의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스튜디오의 복도는 매우 조용했다. 또각또각 하고 울리는 구두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나타샤는 그녀의 대기실문 앞에 섰다. 손에 들고있던 클러치백에서 열쇠를 꺼낸 그녀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짙은 어둠이 그녀를 맞이한다.
분명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릴거라 생각했던 그녀는 내심 당혹감을 느끼며 벽을 더듬어 불을켰다. 무언가를 찾는 듯 대기실 안을 훑던 그녀의 시선이 이내 한군데에 고정되었다.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는 남자를 발견한 나타샤는 흠칫 놀라며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목을 짚었다. 정상적인 심박수와 규칙적인 호흡. 안심한 그녀가 천천히눈 앞의 남자를 살피자 그제야 위로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다부진 어깨가 눈에 들어 온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자니 째깍거리는 시계소리와 함께 새근거리는 남자의 숨소리도 조금씩 그녀의 민감한 청각에 감지되었다.
잠든 거였다니. 혹여 적의 기습이라도 받은 것은 아닐까 걱정했던 그녀였기에 뒤느즌 허탈함이 물밀듯이 밀려들었지만 그녀혼자 북치고 장구친 것을 고히 잠든 남자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샐쭉한 표정를 지으며 남자를 살짝 노려보던 나타샤의 눈에그의 동그란 뒷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맞은 편에 가만히 앉아 남자의 두 팔안에 숨은 잠든 얼굴을 엿보던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보리색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은 매우 자연스럽고 또 부드러워서 남자의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성인 남자의 머리카락이라그런지 정말 보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다소 뻣뻣하면서도 부드럽게 휘는 감촉에 빠져들 즈음, 나타샤는 불과 몇주전 본부에서의 일을 상기했다.
잠복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내려온 지령은 각각 모델과 매니저가 되라는 다소 쌩뚱맞은 내용의 것이었다. 거기다가 덧붙여진 또 하나의 문장은 처음 임무의 내용을 들은 남녀를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신혼부부요? 우리가요?'
연인도 아니고 신혼부부라니. 그것도 모델이?
그녀의 파트너, 바튼이 이런 의문점에대해 질문하자 퓨리는 덤덤한 얼굴로 이런 황당한 잠복임무에 대한 이유를 내놓았다. '이번 타겟의 취향이 유부녀라더군. 아주 소문난 악질 바람둥이인 모양일세. 그것도 유부녀만 노리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바튼의 표정은, 정말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신혼을 연기하는 거라면 결사반대라는 남자를 다독이며 나타샤는 임무를 수락하겠노라고 답했다. 국장실을 나와서 거세게 반발하는 바튼의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댄 그녀는 단 한마디로 그를 잠재웠다
"I believe in you, Clint."
나는 너를 믿어 클린트. 그 한마디가 함축하고 있는 바는 컸다. 그녀도 그가 함께할 것이기에 수락했다는 그리고 그가 함께 있기에 안전하고 꼭 성공할 것이라는 파트너간의 신뢰와 강한 유대.그녀가 그에게 답을 구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바튼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지못해서 말하는 거라는 표정은 감추지 않았지만, 그 모습이 흡사 퍼그를 보는 것 같아 지적을 하진 않았다.
"I believe in you, Nat."
그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의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신혼이라고는 해도 숱하게 많은 임무를 해온 두 사람이었고, 동거가 아닌 동거를 해온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었기에 밖에서는 막 결혼해서 깨가 쏟아지는 분위기를 연기했으나 그들이 묵는 거처에서는 평사시의 그들로 돌아가 있었다. 부부보다 먼, 연인보단 가까운. 아마 그들의 관계를 표현하기엔 이보다 좋은 문장이 없으리라. 곧 있으면 쉴드에서 지정한 타겟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할 터이고, 그렇게 되면 이 연극도 끝나리라.
처음부터 모든 것이 가상으로 이루어진 '현실'이었지만, 나타샤는 이대로 이 임무를 마치기엔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모델일을 하면서 그녀가 남자모델들과 일을 할 때마다 소위 '찌그러진'표정을 짓는 바튼의 얼굴을 보는 것이 제법 그리우리라
"Nat-?"
이런,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그녀의 손길에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던 바튼이 잠에 취한 목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나타샤는 종일 촬영 스케쥴이 있던 그녀를 기다리다 지친 그에게 먼저 대기실에서 쉴 것을 당무했었다.자신은 모델일을 하면서 정보수집하는 것이 주업무라면, 바튼은 밤에도 불침번을 서거나 스케쥴 내내 나타샤를 경호하는 일을 해야 했으니 그녀에 비해 육체적으로 두배 세배는 더 고생하는 셈이었다. 오늘도 들어가기 싫다는 그를 억지로 대기실에 밀어넣었던 거였기에 정말 자고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말을 잘 듣고 있었을 줄이야. 눈을 깜빡이고 머리를 흔들며 잠에서 깨어나려 애쓰는 이 고지식한 남자가 나타샤의 눈에는 한없이 귀엽게만 보였다.
"있지 클린트."
"-?"
Chu.
바튼은 감긴 눈꺼풀 위로 닿았다가 떨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어라, 잠까지 단번에 깼더니 일석 이조인걸?
"말 잘듣고 기다린 착한 매에게 주는 선물"
나타샤는 장난기가 다분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정신이 몽롱해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그를 뒤로한채 나타샤는 벽에 걸려있던 코트를 입고 대기실 문을 열었다. 잠깐 돌아보면서 보인 남자의 귓등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빨리 안나오면 두고 갈 거야?"
갑작스런 기습에 크게 놀란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자신을 놀렸다는 것에 삐친 것인지. 남자는 묵묵히 대기실을 나와 그녀를 따랐다. 차에 올라타서 운전대를 잡고 나서야 남자는 오늘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그녀가 입맞춘 곳과 반대쪽 눈 위에 입을 맞춘다. 뒷목을 약하게 당기면서도 이내 뒷통수를 감싸오는 남자의 행동에는 그녀를 배려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이런 서툴고 묵묵한 행동 하나하나가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그를 다르게 보는 많고많은 이유들 중 하나이리라.
*트위터 연성 백업